회사의 위기에서 사람을 돌아보다

소프트웨어 기업에서만 오래 일하다보니, 소프트웨어 산업이 충분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또, 가치를 창출하지도 못하는 나라 현실에서 몇 차례의 기업 위기를 경험한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하면서도 내가 좀 더 잘하는 영역으로 바꿔보자 하면서 전직을 했다.
telco 관련 기업에서 Java 언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패키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전직하였다.
이 무렵에는 회사가 어려워지는 것보다는 좀더 좋은 기회를 찾는 의미가 컸다. 대기업에서 벤처로의 이동이랄까.

두번째는 닷컴 버블과 코스닥 버블이 꺼지면서 과대평가된 기업의 기술 가치가 하루아침에 곤두박질하였다. 매출 실적 중심으로 기업 가치를 재평가하는 분위기로 급변하였기 때문에, 미래 기술 가치에 의존하던 기업으로서는 더 이상 투자를 유치하지 못하고 캄캄한 터널 속을 지나야했다.
이 기업은 결국은 터널을 지난 후 기술 가치를 평가받아 다른 회사에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인수되었다.

이때는 터널의 초입에서 갑작스런 환경 변화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쳐 먼저 떠나고 말았다.

지금 또다시 어려움을 맞았다.
기술 수준이 이전 기업들에 비해 훨씬 높은 기업이고, 책임도 훨씬 높아진 자리에 있지만, 회사는 잠깐의 높은 매출에 취해 과도하게 투자를 여러 부문에 걸쳐 진행하였고, 때마침 불어닥친 전세계적인 금융 위기와 맞물려 매우 어려운 한 해를 보내야 했다.

아직도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지만, 지난 번 경우와는 달리 상당한 매출을 유지하고 있고, 보유한 부동산도 있어서 기업 정상화는 몇 달이라는 시간을 남겨두고 있을 뿐이다.

다만, 터널을 오래 지나오는 동안, 거의 반년이 지나면서 지치고, 믿음과 존중이 닳고, 의욕이 감추어진다. 또, 오랜 시간 같이 할 것 같던 동료들이 먼저 떠나가기도 한다.

이 시간들을 다 지켜내면서 소프트웨어를 하는 사람에게는 이 회사는 아직 많은 가치와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얘기해보지만, 당장의 어둠은 목소리를 잦아들게 한다.

동료들과 소프트웨어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 생존의 문제를 끊임없이 얘기하는 시점이다.
물론 생존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의 가닥을 잡고 있다.
적어도 이 회사는 붕괴 위기에서는 거의 벗어났다.
다만, 회복이 눈으로 보이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 동안 정신없이 달려오며, 좌충우돌했다. 여기저기 아쉬운 기억들을 많이 남겼다.
삶의 문제로 연결하니 후회가 가득하다.

문득 옆을 돌아보니,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 아내는 어려운 시간 속에서도 믿고 기다린다. 예전에도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다. 아이들도 여전히 해맑고 아빠와의 어떤 고리도 약하게 하지 않았다.

삶의 문제만을 얘기하기엔 너무 힘들다. 본업인 소프트웨어 문제가 훨씬 익숙하다. 다만, 삶이 있다는 것, 아직 헛되지 않았다는 것 어려운 시기에 확인을 한다.

부끄러운 기억으로 가득하지만 좀더 시간을 다듬어갈 수 있겠다.
어두운 시간은 소망을 잠시 가리고 있을 뿐이다.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비관할 이유가 많지 않다.

세번째 기업의 위기에서는 터널을 지나 햇살 속으로 나갈 때까지 가치를 꼭 움켜쥐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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