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기억이 창의의 원동력 ?!

특정한 알고리즘을 찾으며 밤을 뒤척이다가 출근길에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뇌는 특정한 느낌을 키로 해서 관련 기억들을 찾아준다. 아마도 어떤 상황에서 느낀 느낌을 상황과 함께 저장하는 구조가 아닐까 싶다.

어떤 친구는 패턴 매칭과도 유사하다고 얘길 하던데 키가 되는 패턴이란 것이 그러한 순간적인 감성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감정보다는 매우 세분화된 느낌일 것이다.

요즘따라 옛 기억들은 찾은 후에 곰곰히 앞뒤를 연결해보면 시간이나 인과 관계가 안 맞는 것들이 많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쇠퇴했거나, 가끔씩 과도한 음주로 인한 뇌세포 소실이 원인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왜 이 기억들이 떠올랐을까 생각해보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느낌들이 공통성이 있었던 것 같다.

창의는 논리적 연역에서 출발한다는 주장이 있다. 즉, 창의는 논리 체계에 따라 정보를 재구축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주장이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수학적 귀납법의 경우 결과적으로 증명은 이루어지지만, 그 증명은 연역의 방법이 아니라, 어떤 선험적 직관에 의한 귀납으로 증명하기 때문에 이러한 사고 과정도 중요한 창의의 하나로 본다면 연역적 논리 전개만으로는 창의를 이해할 수는 없다.

선험적 직관이란 선행 학습에 기반한 개괄적 느낌을 뜻한다. 특정한 상황의 알고리즘을 찾는 일은 그 상황을 아무리 쥐어짜도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때 발생하는 논리적 탈출구는 직접적으로는 연관이 없는 다른 관련 경험 지식을 적용함으로써 찾는 경우가 많이 있다.

뇌가 유사한 느낌으로 저장해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지식과 기억들을 상황에 대입했을 때, 직접적인 해결은 아니지만, 새로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발명, 대단한 창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뇌에 저장된 기억들이 정확하지 않음을 슬퍼하지 말자. 이런 잘못된 기억, 잘못된 직관들을 상황 대입을 통해 창의를 이루는 또다른 방법론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정확한 은유에 기반한 연역적 논리 전개를 통한 새로운 속성과 법칙성의 발견이 하나의 방법이라면, 잘못된 기억과 직관을 상황 대입하여 새로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또다른 창의의 방법이 아닐까.

문득 지하철 속에서 알고리즘의 상황을 정리하다가 떠올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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