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al, 잉여, 목적 활동, 잡상


목표(goal)는 수준과 시간의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goal을 설정하는 것과 성취하는 것은 많은 경우 하나의 연속된(반복된) 과정이다.
goal 설정 시 수준을 반영하는 간단한 문장을 요구하는 편이지만 시간에 대한 부분은 늘 reasonable한 수준이라고 implicit하게만 요구한다.

스스로는 계속해서 수준과 시간을 수정해가야 하겠지만 manager 혹은 adviser가 판단할 수 있는 건 그 사람의 능력을 고려한 합리적인 노력 여부와 방법적인 부분 정도이다.

시간에 대한 한계를 먼저 설정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시간을 무시하는 것은 또한 잘못된 일이다. "내가 마무리할 때가 마무리하는 것이다"라는 사고는 대부분 성과 측면에서 비효율적이며, 목표를 추진하는 사람의 성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준과 시간, 그리고 성장이란 화두가 적합하지 않은 영역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영역은 goal이란 표현도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 시각을 다르게 해서 근원적인 문제를 떠올려보자.

왜 우리는 더 나은 성과와 성취, 성장을 얘기하는 걸까.
하고 싶은 만큼 일하고 그 결과를 나눠가지면 안되는 걸까.
엄청난 수준으로 생산력이 향상되면 과연 그게 가능한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판단한다.
사람 자체의 생산력이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비용 없이 무한의 잉여를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본다.
물론 불필요한 일들은 크게 줄일 수 있으리라고 본다. 판단에 집중할 수 있고 상대적으로 변화와 개선의 사이클도 짧아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그러한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고도의 인간 활동의 숙련을 위해 보조하는 역할들을 할 거라고 본다.

적어도 잉여의 생산은 유럽의 복지에 대한 개념이 국내의 복지에 대한 개념과 다른 것처럼 노동 없이도 인간으로서 삶을 기본 보장하는 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진보를 이끄는 힘들은 여전히 goal을 필요로 한다고 본다. 인간다운 삶에 대한 인식 수준도 기술의 진보와 사회의 진보에 따라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사회의 어느 부분은 그러한 진보를 이끌어야 하고 그 영역은 좀더 goal-driven한 조직이어야 한다고 본다.

인간의 목적적 활동이 앞으로 수십세기 동안은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잉여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데 도움을 주겠지만 아직 그 잉여는 지구적 영역에서 보면 현실화되지 않았다.

개인의 형태로도 조직의 형태로도 goal이 유의미하다.
특히 하나의 결과물이 보다 많은 인간들에게 영향을 주기 원한다면 더욱 그렇다.

잠시 goal과 잉여, 목적 활동에 대해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던져본다.

목적 활동과 인간의 본성 관련하여 좀더 생각해보면..


마르크스가 본건 매우 선의적 존재로서의 노동자였고 아담 스미스가 본건 매우 이기적 존재로서의 경제 주체들이었던가.

인간은 그 어느쪽도 아니고 여러 성향이 혼재할뿐인데..

공동체가 인간의 긍정적 요소를 강화하는 효과를 가진다면 가족 혹은 우리라는 단위의 소속감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뜻일게다. 그 공동체가 선별적인 집단이라면 더욱 유리할 것도 같고..

실험의 방향은 선의적 공동체가 가능한가 하는 게 제니퍼소프트가 추구하는 것과 관련된 것 같고..
성과를 내고 성장하는 기술집단 공동체가 현재 고민하는 부분인데..
기술과 선의의 강화를 같이 추구할수 있을까 둘은 상호 관련이 있을까 아직 답을 내리지 못한 실험의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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